HCI 박사의 의미

HCI 박사의 의미

October 29, 2024

나의 인생에서 박사 과정은 중요한 시기였다. 나의 가치관과 내가 생각 하는 방식 등을 많이 바꿔 놓았다. 나 말고 다른 박사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책도 나오고 다양한 블로그들과 커뮤니티에 박사의 의미, 대학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 않나 싶다. 모두의 삶이 다르듯이, 모두의 박사 과정도 다르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글을 쓴다기 보다는 내가 고민 했던 생각들과 지나고 나서 깨달은 것들을 정리 해 두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나는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이라는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를 공부 했고 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한국과 HCI라는 큰 주제 대한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왜 박사과정을 하기로 했는가?

이 질문은 ‘왜 대학원을 갔는가?’와 조금 다른 결의 질문이다. 나는 석사를 따고 박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대학원에 대한 고민은 석사를 들어 오면서 이미 했었다. 석사와 박사를 통합해서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석사를 따고 나서 왜 또 박사를 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왜 석사에서 박사를 굳이 가기로 했는가?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매우 호기로웠다. 자신감에 많이 차있었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참여 했던 프로젝트는 Electro Impedance Tomography (EIT)를 활용한 제스처 인식 이었다. 간단히 이야기 하면 스마트워치 처럼 생긴, 전극이 달린 팔찌로 손의 제스처를 인식하는 기술을 개발 하는 것 이었다. 이를 활용하면 다양한 손의 제스처를 스마트워치 등의 기기들의 입력으로 사용 할 수 있게 된다. 나름 회로와 신호 처리 및 머신러닝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기에 처음에는 금방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고 내가 하려던 것과 같은 논문이 얼마 뒤에 나와 버렸다.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이 프로젝트에 석사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1년 반 동안 진전이 없었고,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주제로 석사 연구 주제를 바꿨다. 그렇게 바꾼 석사 연구 주제는 EIT 연구와 비슷했지만 좀 달랐다. 팔찌 형태의 디바이스로 손의 제스처를 인식 한다는 것은 같았지만 EIT가 전기 신호를 사용했다면 나는 진동을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손으로 제스처를 하면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걸 팔찌에서 센싱하여 제스처를 인식하는 것이다. 석사는 2년 이기에 남은 6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했고, 가까스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디펜스 전날까지 PPT를 고치며, 스크립트를 외우며 밤을 샜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은 연구실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

이렇게 나의 생각과 달리 연구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연구실에 처음 들어가면서 내가 정말 인상적이게 본 연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inForm 연구였고 다른 하나는 Penui 연구였다. 나도 이것들과 같이 정말 멋진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이 연구들의 의미가 나에게 크게 와닿았지는 않았다. 그냥 멋져 보였다. 하지만 석사 과정은 나에게 너무 짧았고, 나중에 그만 두더라도 사람들이 놀랄만한 것을 하나라도 만들고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박사 진학을 결심 했다.

나는 박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사실 되돌아서 생각해 보면 앞에서 말한대로 멋진것을 만들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박사를 가면 안되었다. 연구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 또는 유용성을 찾고 검증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내 생각에 HCI는 만드는 것 보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이 다른 CS 분야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생각 한다. 하지만 내가 관심 있던 것은 신기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것은 연구에서 정말 작은 부분에 해당 한다는 것을 박사 과정 중에 알게 되었다.

되돌아 보면 나는 평생 연구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 연구에 관심이 있었으면 학부때 연구실들을 기웃 기웃 하면서 연구를 해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학부때는 경영에 관심이 있다고 경영 컨설팅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방학때도 영화 찍어 보겠다고 방학 내내 시나리오 생각하고 스마트폰을 영화를 찍었었고, 연기를 해보겠다고 한예종에서 계절학기를 듣고, 전자음악 만들어 보겠다고 상상마당에서 강의를 듣고, 연구 아닌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걸 몰랐다는게 말이 안되는것 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오히려 박사를 하고 나면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긴다. 내가 많이 주위에 하고 다니는 말인데, 나는 박사 졸업 논문을 쓰고 나서 드디어 내가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정확히는 어떤 연구가 좀 더 학문적으로 의미를 가지는지 뚜렷해 졌다.

HCI 박사가 가지는 의미

이제 내가 보는 HCI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대학원에 진학 하기 전에 어떤 교수님께 HCI 분야에서 박사를 하는 것의 의미를 물어본적이 있다. 그 때 그 분의 대답은 일종의 ‘자격증’이라고 말씀 해 주셨다. 나는 아직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운전 면허가 없어도 운전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면허가 없으면 아무도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HCI 박사 학위가 있으면 이 사람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근데 내 생각에는 이 자격증이 스킬이나 지식에 대한 자격증 이라기 보다는 이 사람이 사용자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격증 같다. 이것도 스킬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나는 스킬 보다는 더 넓은 범위 무엇이라 생각한다. 스킬의 의미를 좁게 생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이것은 분명 ‘백엔드 개발’과 같은 스킬과는 좀 다르다.

나는 HCI 박사 과정은 시스템을 사용자 중심적으로 만드는 것을 체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HCI를 공부 하면서 사용자 중심적으로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왜 수많은 제품들과 시스템들이 사용자들에게 외면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 박사 과정을 하면서 모든 문제들을 사용자 중심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대부분의 이슈들을 사용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오해 하면 안되는 것이 HCI를 공부 하면 무조건 사용자들에게 사랑 받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하는 사용자 중심적 시스템 개발의 체화는 관점을 수립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특정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특정 관점으로 바라보기만 한다고 해서 곧 바로 좋은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과 개발 역량의 문제인데 HCI 박사 과정이 이런 역량을 길러주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 한다. 사실 이것이 나를 박사과정 내내 괴롭히는 문제였다.

HCI 박사 한계점

위에서 HCI 박사는 문제를 사용자 중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체화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굉장히 개념적인 부분인데, 보통 공학은 실재적인 것을 다룬다. AI 박사 과정을 한 사람은 AI 모델을 만들고 개선할 수 있다. 로봇으로 박사 과정을 한 사람은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HCI 박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HCI 박사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만드는 output으로 정의 할 수가 없다. 분야 자체도 너무 넓어서 누구는 박사 내내 앱을 만들지만, 누구는 박사 내내 납땜만 하기도 하고, 누구는 사람들과 인터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HCI 박사를 땄다고 해서 ‘저는 xx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라고 소개 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나는 HCI가 공학 분야에서 특수하다고 생각 한다.

이것이 어떤 문제가 있냐면 내가 사람들에 비해서 더 뛰어나게 무언가를 만든다고 이야기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 하면 남다른 엔지니어링 스킬셋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하기 어렵다. 나의 연구에서 웹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현업에서 웹 개발을 하는 개발자들 보다 더 나은점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HCI 연구에서 AI를 사용 했다고 해서 AI 박사들 보다 AI 모델을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주장 하기도 어렵다. 더 잘 만들 수 도 있겠지만 제시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박사 때 세부 주제가 있을 것이고 그것에 특화된 스킬 셋이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VR/AR 연구를 했다고 하면 VR/AR 어플리케이션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업에서 VR/AR 앱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에 비해서 더 나은 부분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러한 논리로 모든 도메인에서 HCI 전공 여부가 특정 레벨의 일반적인 엔지니어링 스킬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 HCI는 만든 결과물 자체가 중요한 학문이 아니고 ‘이걸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가?’가 중요한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관점이지 구체적인 지식이나 스킬이 아니다. 어떤 분야더라도 HCI를 공부 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더 잘 만든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고민은 내가 인턴을 찾고 취업을 준비 하면서 더 깊어졌고 그래서 주변의 HCI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웠었다. 그럴때 마다 내가 도달한 결론은 같았다.

HCI 박사 학위가 특정 엔지니어링 스킬을 보장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개개인 마다 연구 분야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분야들은 거시적인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박사 과정때 hand-tracking 연구를 같이 했었다. 이 분야는 목적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손의 위치와 자체를 최대한 잘 인식 하는 것이다. 관절을 트래킹 하는지, 손 모델 전체를 트래킹 하는지와 같이 정보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hand-tracking 연구들은 보면 특정 벤치마크 셋에 대해서 더 높은 점수를 보였다는 것이 결과이다. 하지만 HCI에는 이런 식의 연구가 거의 없다. 손 제스처에 대한 연구라고 해도 다들 해결 하고자 하는 문제가 다르다. 그러다보니 접근 방식도 결과도 다르다. HCI Research as Problem Solving 논문에서 HCI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research problem 자체를 contribution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문제의 대상 도메인이 매우 넓어서 도메인이 존재 하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라 생각 한다. 엔지니어링 스킬은 도메인 위에서 존재하게 되는데 도메인이 개인마다 천차 만별이기 때문에 HCI 학위는 도메인 관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실제로 연구자들이 도메인을 많이 넘나든다. 내가 있던 연구실만 하더라도 햅틱 연구도 하면서 VR 연구도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HCI는 도메인에 관계 없이 그 도메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특정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 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취업을 할 때이다. 특히 리서치가 아닌 부분으로의 취업을 생각한다면 매우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사실 나도 취업 시장에 제대로 뛰어든 적은 없어서 나의 생각이 현실과 다를 수 있다. 다만 내가 찾아 보았을 때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포지션들은 특정 도메인에서 특별한 스킬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위에서 말한 이유로 HCI를 공부 한 것이 보통의 엔지니어 포지션으로는 큰 경쟁력을 가지지는 못한다고 생각 한다.

HCI 박사의 장점

하지만 HCI 박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도 있다. 바로 대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HCI는 문제를 정의 하는 것 부터 시작한다. 아무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슈를 문제로 만들어서 풀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산업에서 프로덕트를 만드는 초기 단계에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 한다. 세상에 어떤 프로덕트가 더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HCI에서 문제를 찾은 방법으로 지금 세상에 필요한 제품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초기 제품이 존재 한다면 이것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주변에 HCI는 스타트업을 하기에 정말 좋은 분야인것 같다고 많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나 역시 스타트업에 취업을 했다.

나는 원목 놀잇감을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러 갔다. 내가 조인을 할 때는 소프트웨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없었고 대략적인 플랜만 있었다. 대표님과 공동 창업자 분을 만나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플랜을 들었는데 솔직히 나에게는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큰 매력 포인트였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는 싶지만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야 말로 HCI 박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솔직히 나도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HCI 박사 과정에서 배운 것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능력을 믿었고 이 회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다. 내가 만약 HCI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HCI 박사를 하면서 나는 답이 없는 상황을 좋아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은 HCI 연구를 하기 좋은가?

지속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컴플렉스 중 하나는 해외에서 박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학생들에 비해서 더 적은 경험을 한 것 같고, 그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온 것만 같았다. 외국에서 인턴과 같은 좋은 기회를 얻고 싶었지만 실패했고, 내가 외국에 있었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사실 예전에는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박사 과정을 하면서도 유학을 시도해 볼껄 이라는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학부시절 나는 학점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유학에 도전하지 않았는데,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연구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별로 욕심이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부분의 공학 분야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한다. 외국에 더 좋은 학교가 많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인턴쉽만 하더라도 일단 미국에 있으면 미국 회사에서 좋은 기회를 얻기가 수월 할 것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우리나라가 HCI를 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 한다.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HCI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는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외국 유학을 가야만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국 각지에 좋은 HCI 연구를 하는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고 SIGCHI Korea Local Chapter 와 같이 커뮤니티도 활발해 지고 있다. HCI의 CS ranking을 보더라도 KAIST가 상위권에 랭크 되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HCI 연구를 하는 기관이 있다. 좋고 나쁨은 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절대 나쁜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그래도 욕심이 있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을 고려해 보기를 추천한다.

후회는 없는가?

다시 돌아가도 HCI 공부를 할꺼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지체없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박사 과정 전체에서 후회가 없지는 않다. 내가 진짜 연구를 하고 싶은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좀 더 면밀하게 고민을 해봤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박사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색깔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 하는데 나는 그 점이 좀 부족했다. 나만의 문제를 찾아서 해결 해야 했는데, 당장 눈 앞의 논문을 내는데 급급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장점도 있었다. 나름대로는 HCI 내에서도 꽤나 넓은 스펙트럼의 연구를 했다고 생각 한다. On-device 머신러닝을 이용한 센싱도 해봤고, 딥 러닝 모델을 데이터셋 구축부터 트레이닝까지 하는 연구, 하드웨어를 만드는 연구,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연구, fabrication 연구 까지 다양했다. 박사 논문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박사 과정 자체는 재미있었다. 물론, 지나고 보니 재밌었던거지 당시에 논문이 안나오던 때는 정말 괴로웠다.

나는 궁극적을 창업을 하고자 한다. 이 꿈은 정말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창업을 염두해 두고 이런 저런 선택들을 한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HCI를 선택 한게 아닌가 싶다. HCI는 사람들이 잘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혹은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학문이다. 이건 성공하는 프로덕트의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 아닐까? 나는 공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게 꿈이고, HCI 박사 과정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 이었다고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