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분야에는 Soft Robotics라는 것이 있다. 보통의 로봇은 철과 알루미늄 같은 강체로 만들지만, 실리콘이나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재질로 로봇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로봇은 기존의 강체 로봇과 성질이 다르다. 그래서 소프트 로봇들은 보통의 로봇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 좁은 틈 사이에 몸을 구겨 넣는다든가, 복잡한 형태의 물체를 쉽게 잡는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부드러운 재질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로봇들을 다루는 방법도 기존의 로봇들과는 다르다.
나는 이렇게 새로운 재질로 로봇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AI의 등장으로 인해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는 ‘코드’로만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AI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즉, AI라는 새로운 ‘소재’가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소재로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나는 ‘말랑한 소프트웨어(Soft Software)’라고 정의한다.
AI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 AI가 소프트웨어의 기능 안에 포함된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 AI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에이전틱 코딩(agentic coding)을 의미한다.
- 사용자의 멘탈 모델에 소프트웨어라는 정적인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고, AI가 동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사용자의 요청을 처리한다.
1번은 Soft Software의 초기 형태이고, 2번은 Soft Software로 또 다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행위이다. 그리고 3번이 Soft Software의 완성된 형태이다. 1번과 2번은 순서대로 이루어졌다. 1번은 ChatGPT의 탄생에서, 2번은 클로드 코딩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제 3번이 이루어질 차례다.
Soft Software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모습일 수 있다. 엑셀 같은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처리에 능한 AI를 구매한다. 그럼 그 AI가 동적으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용자가 요구하는 분석을 수행하고 시각화한다. 이 AI를 구매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형태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비슷한 결과물을 얻는다.
이 방식의 장점은 명확하다. 나의 요구에 딱 맞는 툴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내가 하나의 툴(예: 엑셀)을 배울 필요가 없다. 메뉴를 외울 필요 없이 내 마음대로 툴의 메뉴를 구성할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필요 없지만 나에게만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AI가 내가 잘 사용할 수 있고 익숙한 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DeepSeek Harness의 경우에는 ‘Everything is a plugin’이라는 카피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Soft Software와 비슷한 개념이다. AI에게 어떤 태스크를 요청하면 AI가 플러그인을 만들고 그걸 활용해서 처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앞으로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사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주는 AI를 구매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AI이기 때문에, 그것을 Soft Software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
번외 1) 약간 주제에서 벗어난 생각이지만, 소프트 로보틱스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하네스의 개념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비정형의 소재를 내가 컨트롤하려면 일종의 틀이 필요하다. 그 틀이 하네스인 것이다. 철저히 기계공학을 공부한 사람의 관점이다.